오랜 시간 기타를 치면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음악적 열망과 좌절 사이를 여러 번 오가곤 했다. 그 시간 동안 기타를 대하는 마음도, 음악을 바라보는 무게중심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번 앨범은 그런 지금의 나에게서 시작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음악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특정한 장르나 형식으로 앨범을 규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잘 알려진 라틴 음악을 모으기보다 오랫동안 좋아했고, 여러 번 다시 찾아 들었으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음악들을 골랐다.
글라우지우 산토루, 키케 시네시, 니코 로하스, 이그나시오 세르반테스, 파데리코 루이스, 치키냐 곤자가, 안토니오 에스테베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 서로 다른 음악적 언어를 가진 작곡가들이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내가 오래도록 좋아해온 어떤 정서가 있었다. 그 중에는 기타를 위해 쓰인 음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음악도 있다. 원래의 악기나 형식보다 그 음악 자체에 끌렸고, 기타로 연주하고 싶은 작품들은 직접 편곡했다. 그 과정에서 원곡을 기타에 단순히 옮기는 것보다, 내가 그 음악에서 좋아했던 그 무엇인가를 기타의 소리로 다시 찾아가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이번 앨범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렸던 음악과 새롭게 발견한 음악, 그리고 나 자신의 음악이 함께 놓여 있다. 돌이켜보면 하나의 분명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앨범은 아니었다. 막연한 끌림으로 반복해서 듣던 음악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개인적인 취향의 목록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그래서 이 앨범의 제목을 An lntimate Playlist라고 붙였다. 여기서 'Playlist'는 단순한 곡의 목록을 뜻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무엇을 듣고 무엇을 좋아해왔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지를 담은 기록에 가깝다. 라틴아메리카 음악이라고 하면 흔히 강렬한 리듬과 화려한 색채를 먼저 떠올린다. 나 역시 그런 에너지에 매력을 느끼지만, 이번 앨범에서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던 것은 그 이면에 남아 있는 조금 더 조용하고 묵직한 정서였다.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음악들 속에서 길어 올린 가장 사적인 정서. 이 앨범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적인 플레이리스트가 듣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