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리안은 첫 정규앨범 [Someday My Prince Will Come]에서 재즈 스탠더드와 더불어 우리에게 친숙한 곡으로 따뜻하고 깊이 있는 멜로디를 전한다. 스트레이트-어헤드 재즈에 능한 피아니스트 강재훈, 베이스의 박진교, 드러머 이성구, 그리고 기타리스트 김재우와 함께 차근차근 만들어 온 이 음악들은 경쾌하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고, 선율을 정직하게 끌어내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어떻게 이런 담백함과 세련된 감각이 함께 놓일 수 있을까? 첫 트랙부터 들여다보면 좋겠다.
지미 반 휴센의 스탠더드 'Like Someone in Love'는 강재훈-박진교-이성구의 산뜻한 리듬으로 시작한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 순으로 입장하여 멜로디의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리안의 첼로가 군더더기 없이 올라간다. 풍부한 톤으로 헤드 멜로디를 연주한 리안은 피아노 트리오를 위해 잠시 비켜선다. 강재훈의 스윙감은 정평이 나있는 대로 매끄럽고 유연하다. 솔로를 마친 강재훈은 리안의 첼로와 함께 움직이면서 드럼과 몇 마디 주고받고, 다시 헤드 멜로디로 돌아간다. 이 전개는 재즈를 듣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렇기에 연주자들의 내밀함이 더욱 기민하게 감지되는 형태이기도 하다. 속임수 없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이 스탠더드 연주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음악 앞에서 긴장을 내려놓게 된다.
이어지는 빅터 영의 발라드 'When I Fall in Love'는 첼로의 음색이 보다 두드러진다. 사랑의 감수성을 환기하되 감상에 파묻히지 않는 이 균형감은 리안의 연주와 트럼페터 홍태훈의 맑은 톤 덕분이다. 보컬 듀엣의 음악을 듣는 듯 서로 다른 색채의 감정선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색깔의 스탠더드 연주가 피어난다. 'Autumn Leaves'는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스탠더드 곡이다. 여기서 리안의 정공법이 나온다.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첼로의 천천하고도 짙은 보잉은 멜로디를 새기고, 강재훈은 적은 타건으로도 깊은 울림을 만든다. 이는 첼로와 피아노 트리오가 함께 구축할 수 있는 애수의 깊이다.
'Dream a Little Dream of Me'에서는 분위기를 바꿔서 첼로가 넉넉한 스윙감을 장착한다. 리안이 만들어내는 첼로의 다이내믹은 리듬을 여유롭게 감싸면서 멜로디를 빚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칫 첼로가 둔하다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는 청자에게 그런 의심이 생기기도 전에 능숙하게 불식시킨다. 김재우의 기타와 함께한 마누엘 퐁세의 'Estrellita'에서는 두 대의 현악기가 들려주는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발현악기와 찰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질감의 교차는 이번 앨범처럼 재즈 스탠더드가 엮여 있는 작업에서 유독 눈에 띄는 트랙이다.
앨범과 동명의 스탠더드 'Someday My Prince Will Come'는 앨범 커버의 유화 작품 《화장하는 여인》(Woman at her Toilette)과 공명한다. 그림의 몽환적인 색채와 자유로운 붓놀림, 스케치 같은 느낌은 리안의 첼로 연주가 지닌 묵직하면서도 리듬을 살리는 방향성과 유사하다. 이런 생동감은 피아노 트리오와 함께 더욱 돋보인다. 이외에도 'Polka Dots and Moonbeams'은 보사노바 리듬 위에서 새롭게 태어났고, 마지막 곡인 에릭 사티의 'Je Te Veux'에 이르러서는 다시 기타와 첼로가 만난다. 서로의 깊이를 방해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기척을 보내는 모습은 어떤 광경보다도 더욱 서로의 소리에 감응하는 순간을 만든다. 앙리 파코티의 시를 가사로 삼은 원곡의 내용은 격정적이지만, 리안과 김재우는 오히려 초연하고 차분하게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과 기존하는 음악의 빈틈을 부드럽게 여는, 그러면서도 친근한 첼리스트 리안의 앨범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