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DC(에이시 디시)는 헤비 메탈 `존재의 이유`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을 온 형제 맬콤 영(Malcolm Young)과 앵거스 영(Angus Young)에 의해서 지난 73년 결성된 이 그룹은 지금까지 `초지일관(初志一貫)` 오직 헤비 메탈만을 연주해왔다. 언뜻 보기에는 한가지만을 고집하는 `단순무식 밴드`로 비춰지기도 할 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들이 발표하는 앨범들은 고출력 강성 음악을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주었고 헤비메탈의 물결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뭐니뭐니해도 80년에 발표한 앨범 <백 인 블랙>(Back In Black)은 헤비 메탈 사상 길이 남을 `걸작중의 걸작`이었다. 전작 <지옥행 고속도로>(Highway To Hell)로 그룹의 위상을 전 세계 메탈 음악계로 끌어올린 이들은 이 앨범으로 80년대 메탈의 융성을 주도했다. 그러나 <백 인 블랙>은 결코 태평한 상태에서 창작의 고민만으로 일궈낸 예술은 아니었다. 이 명작을 주조해낸 동력은 음악학이 아닌 `심리학`이었다.
이 음반 얼마 전 `거친 울부짖음`을 토해낸 보컬리스트 본 스코트(Bon scott)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멤버들은 참담했다. 외부에는 그것으로 끝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그 빈자리에 `강철 성대의 소유자`인 브라이언 존슨을 새로이 영입하고 신작을 고인에게 바치는 추모앨범으로 기획했다. 슬픔을 씨앗으로, 명복을 비료로 뿌리기로 했다. 정성을 다해 혼신을 다 바쳐 녹음하고 작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발매되자마자 플래티넘을 기록했으며, 수년간 앨범이 지속적으로 팔려나가 판매량 1200만장을 넘어서는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롤링 스톤』지는 80년대를 빛낸 100장의 앨범중 이 앨범을 26위에 랭크시켰으며, 영국의 『큐(Q)』또한 80년대 초반의 록 앨범 중 최우수작으로 꼽는 등 평단도 찬사 일색이었다.
본 앨범은 화려하게 디자인했던 이전 앨범 재킷들과는 달리 `추모앨범`임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검소하게 검은 색으로 꾸몄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개구쟁이 식 장난기 가득한 태도와 음악을 구사해왔지만 이 앨범만큼은 거기에 진지함을 덧입혔다. 본 스코트를 기리는 장중한 종소리의 첫 곡 `지옥의 종들`(Hells bells)부터 엄숙함을 잃지 않으려 했고 AC/DC 답지 않게 무거운 사운드로 음반 전체를 가져갔다.
하지만 조의(弔意)가 전부는 아니어서 본 스코트와의 유쾌한 기억을 이곳저곳에 심어놓았다. `나도 술 한잔`(Have a drink on me)은 블랙 유머였고 `그 개에 뼈다귀를 줘`(Give the dog a bone)의 경우는 `화장실 벽의 낙서예술가`를 자처했던 스코트 못지 않은 장난기를 담았다. 브라이언 존슨의 보컬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소화해냈다. 저음과 고음을 곡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번갈아 구사했고 힘이 넘치는 샤우트는 AC/DC에서의 첫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간판인 앵거스 영의 약동하는 기타 리프와 함께 이 앨범을 그 무렵에 드문 `파워하우스`로 곧추세웠다.
앵거스의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백 인 블랙`, 빌보드 싱글 차트에 16주 동안 머물렀던 히트곡 `넌 날 밤새 흔들어놓았지`(You shook me all night long), 앵거스의 격렬한 솔로 연주와 브라이언의 보컬 대결이 뜨겁게 펼쳐지면서 둘이 그룹을 양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는 `다리를 흔들라`(Shake a leg) 등 모두가 고출력의 `고전적 하드 록`이었다. 연주 측면에선 `8비트 록`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본 스코트만이 아닌 로큰롤도 이들의 트리뷰트 대상이었다. 굉음이 공해 아닌 미학임을 하드 록의 크리스탈 음악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마지막 곡의 제목이 `로큰롤은 결코 소음공해가 아냐`(Rock and roll ain`t noise pollution)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앨범에도 이들의 곡이 차용되어 한층 국내에서 친숙해진 앨범이기도 했다. 작곡자가 앵거스 영으로 표기된 수록곡 `로큰롤 댄스(Rock n` roll dance)`는 `백 인 블랙`의 메인 기타 리프를 빌린 것이었다. 서태지가 과거 국내 최초의 헤비 메탈 그룹인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결코 낯선 일도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를 포함 랩 이전 전 세계에 걸쳐 젊음의 주력 사운드가 헤비 메탈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단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