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관객과 숨바꼭질을 벌이듯, 퍼즐을 맞춰 나가는 유희를 선사하는 휴먼 미스터리 드라마다. 느닷없는 연쇄적인 소녀들의 실종 사건, 혼란에 빠진 주인공들, 사건이 만드는 팽팽한 긴장감, 범행수법에 대한 의혹,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교묘한 구성. 미스터리 드라마로써 장르 영화의 충실함에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열 한 살 어린 소녀를 위탁 보호하게 된 사진작가 류정호(김상경), 그를 그림자 같은 사람이라 부르는 소녀 수연.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서서히 소통을 하면서 마음을 열고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게 되면서, 조금씩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다. 남자가 다시 웃음을 찾고, 삶의 희망을 되찾는 순간,'수연'이 연쇄실종사건의 다음 표적으로 지목된다. 그 소녀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임을 아는 남자는, 스스로 택한 조용한 세상을 깨고 나와 자신의 희생을 각오한다.
<조용한 세상>은 건조하게 살아가는 사진작가와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소녀의 교감과 사랑, 그리고 소녀를 위한 조건 없는 희생이라는 점에서 뤽 베송의 <레옹>이 남긴 강렬하고 애틋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마틸다를 위해 죽음을 불사했던 둥근 안경의 레옹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조용한 세상>은 다시 한 번 눈시울을 적시는 감동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머리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사이, 범죄의 거미줄에 걸려든 소녀와 그녀를 구하려는 사진작가와 형사의 사투는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아름답고도 중요한 메시지이다.
▶ 줄거리
평범한 가정집 드럼세탁기에서, 다세대 주택의 옥상 물탱크에서 어린 소녀들의 익사체가 잇따라 발견된다. 신원 미상의 어린 소녀들의 죽음. 현장의 목격자도, 범인의 흔적도 없다. 남겨진 증거는 소녀들이 발견된 현장마다 남겨진 피에로 인형뿐. 그리고 죽은 소녀들의 입가엔 인형처럼 슬픈 미소가 남아 있다.
잔혹한 범죄현장마저 일상이 되어버린 강력반 5년차의 김형사, 용의자 수배전단을 가슴에 품고 다닐 만큼 여전히 열정적이다. 용의자를 쫓는 현장에서 미스터리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신상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사라진 남자, 붙잡힌 용의자들은 그 남자에 대해 알 수 없는 진술을 하며 이상한 남자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또 다른 인질극 현장, 인질범과 대치하고 있는 그 남자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 류정호라는 이 남자, 난폭한 용의자를 순식간에 달래 사건을 해결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원치 않아도 타인의 마음이 들리는 남자 류정호. 어린시절 자신의 능력 때문에 첫사랑을 잃은 이후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한국을 떠났다. 15년만의 귀국, 우연히 위탁아동 수연을 맡게 된다. 거울같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정호와 소녀 수연의 미묘한 동거, 수연의 맑은 눈동자에 정호는 옛 사랑을 떠올리며 자신의 세계를 깨고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한편, 세 명의 소녀가 흔적없이 사라진 소녀 연쇄실종사건을 쫓던 김형사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위탁보호 중인 수연이 네번째 희생자일 가능성을 두고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수연의 위탁보호자는 바로 미스터리한 그 남자, 류정호. 신비한 능력을 가진 류정호의 정체가 뭔지 김형사는 혼란스럽되기만 하다. 철통같은 감시에도 불구하고 수연이는 결국 사라지고, 수연이를 구하기 위한 두 남자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되는데...